Ch2. 한국사능력검정 — 고려 건국과 제도·문화 완전 정복
고려 건국 (918년)
후삼국 시대의 배경
신라 말기 지방 호족의 세력이 강해지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후삼국이 형성되었습니다.
| 국가 | 건국자 | 건국 연도 | 특징 |
|---|---|---|---|
| 후백제 | 견훤 | 900년 | 전주 도읍, 구 백제 부흥 표방 |
| 후고구려 (태봉) | 궁예 | 901년 | 철원 도읍, 구 고구려 부흥 표방 |
| 고려 | 왕건 | 918년 | 송악(개경) 도읍, 궁예 축출 후 건국 |
**왕건(태조, 재위 918~943)**은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으며, 935년 신라를 병합하고 936년 후백제를 정복하여 후삼국 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태조 왕건의 정책
왕건은 지방 호족의 협력 없이는 통일과 왕권 안정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호족을 포섭하면서도 왕권을 강화하는 이중 전략을 취했습니다.
호족 융합 정책
| 정책 | 내용 | 목적 |
|---|---|---|
| 혼인 정책 | 지방 호족 딸과 혼인(29명의 부인) | 호족과의 정치적 연대 |
| 사성 정책 | 공신·호족에게 왕씨 성 하사 | 충성심 확보 |
| 왕씨 분봉 | 왕족을 지방에 파견 | 지방 통제 강화 |
통제 장치
| 제도 | 내용 | 의의 |
|---|---|---|
| 사심관 제도 | 중앙 관리 중 출신 지역 담당관 임명 | 지방 간접 통제 |
| 기인 제도 | 호족의 자제를 개경에 머물게 함(볼모) | 호족 반란 억제 |
훈요 10조
태조는 후대 왕에게 남기는 유훈(訓要 10條)을 작성하였습니다. 주요 내용:
- 불교를 국교로 삼아 연등회·팔관회 개최 유지
- 풍수지리설 존중 (사원 함부로 건립 금지)
- 차령산맥 이남·금강 이서 사람 등용 금지 (지역 차별 논란)
- 중국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지 말 것
광종의 개혁
**광종(재위 949~975)**은 왕권을 위협하는 호족 세력을 제거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주요 개혁 내용
| 개혁 | 내용 | 의의 |
|---|---|---|
| 노비안검법(956년) |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를 양인으로 해방 | 호족의 경제·군사 기반 약화, 국가 수입 증대 |
| 과거제 도입(958년) | 쌍기 건의로 시행, 능력 위주 관리 선발 | 호족 대신 문신 관료 체계 구축 |
| 공복 제정 | 관리의 복색을 4색으로 구분 | 관료제 위계 정비 |
| 칭제 건원 | 황제 칭호 및 연호 사용(광덕·준풍) | 자주 외교 선언 |
| 개경 황도 선포 | 개경을 황도, 서경을 서도로 명명 | 황제국 체제 완성 |
노비안검법: 후삼국 전쟁 과정에서 호족들이 양인 농민을 불법으로 노비로 삼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바로잡아 양인 수를 늘리고 세금 기반을 확대하는 동시에 호족 세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성종과 최승로의 시무 28조
**성종(재위 981~997)**은 고려의 통치 체제를 완성한 왕으로, 최승로의 건의를 수용하여 유교적 관료 국가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최승로의 시무 28조 (982년)
최승로는 역대 5왕(태조·혜종·정종·광종·경종)을 평가하며 28가지 건의를 올렸습니다. 현재 22개 조항이 전해집니다.
핵심 내용:
- 불교 행사(연등회·팔관회) 규모 축소 건의
- 유교 이념에 따른 국정 운영
- 지방관 파견을 통한 중앙 집권 강화
- 문치주의(文治主義) 확립
성종의 주요 정책
| 정책 | 내용 |
|---|---|
| 12목 설치 | 전국 주요 지역에 12개 목 설치, 지방관 파견 |
| 국자감 설립 | 최고 교육 기관(성균관의 전신) |
| 의창 설치 | 빈민 구호 기관(환곡 제도의 기원) |
| 향리 제도 | 지방의 토착 지배층을 향리로 편입·통제 |
| 중앙 관제 정비 | 2성 6부 체제(중서문하성·상서성) 완성 |
고려의 대외 항쟁
거란의 침입 (10~11세기)
| 차수 | 연도 | 내용 | 결과 |
|---|---|---|---|
| 1차 침입 | 993년 | 소손녕의 80만 대군 침공 | 서희의 외교 담판 — 강동 6주 획득 |
| 2차 침입 | 1010년 |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공, 개경 함락 | 현종 나주 피란 |
| 3차 침입 | 1018년 | 소배압 10만 대군 침공 | 강감찬의 귀주대첩(1019) — 대승 |
서희의 외교 담판(993년): 거란 장수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국이며 거란과 국경이 연결되지 않는 것은 여진 때문”이라 주장, 강동 6주 획득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거둠
귀주대첩(1019년): 강감찬이 귀주(평안북도 구성)에서 거란군을 대파한 전투. 고려-거란 전쟁의 결정적 승리
여진의 침입과 별무반
여진: 12세기 초 만주 일대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고려를 압박
윤관의 별무반(1104년 창설): 기병 중심 여진군에 대항하기 위한 특수 부대
| 구성 | 내용 |
|---|---|
| 신보군 | 보병(농민 중심) |
| 신기군 | 기병(말을 소유한 자) |
| 항마군 | 승병(전투 참가 승려) |
1107년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 → 동북 9성 축조 → 여진의 반환 요청으로 1109년 반환
몽골의 침략과 대몽항쟁 (13세기)
| 차수 | 연도 | 내용 |
|---|---|---|
| 1차 침입 | 1231년 | 살리타이 침공, 귀주·자주 항전 |
| 강화도 천도 | 1232년 | 최우, 강화도로 수도 이전 → 장기 항전 결정 |
| 2차 침입 | 1232년 |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살리타이 사살 |
| 계속 침입 | 1235~1259 | 6~7차례 반복 침입, 국토 황폐화 |
| 팔만대장경 조판 | 1236~1251 | 불력으로 몽골 격퇴 기원 |
| 강화 체결 | 1259년 | 태자 친조(親朝) 조건으로 강화 |
| 개경 환도 | 1270년 | 원 간섭기 시작 |
무신정변 (1170년)과 최씨 정권
무신정변의 배경
고려 전기 문치주의 사회에서 무신은 문신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 문신 위주의 과거제·음서제로 무신 승진 제한
- 무신에 대한 문신의 경멸적 태도
- 의종의 방탕한 생활과 무신 홀대
무신정변 (1170년)
정중부·이의방·이고 등이 의종을 폐위하고 권력을 장악. 무신 집권기(1170~1270) 시작.
최씨 정권 (1196~1258)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은 후 4대에 걸쳐 62년간 집권.
| 인물 | 집권 기간 | 주요 사항 |
|---|---|---|
| 최충헌 | 1196~1219 | 교정도감 설치(최고 권력 기구), 봉사 10조 건의 |
| 최우 | 1219~1249 | 정방 설치(인사권 장악), 삼별초 조직, 강화도 천도 |
| 최항 | 1249~1257 | 집권 유지 |
| 최의 | 1257~1258 | 김준에게 피살 → 최씨 정권 붕괴 |
교정도감: 최충헌이 설치한 최고 권력 기구. 모든 국정을 처리
정방: 최우가 설치한 인사 기구. 문무 관리 인사를 좌우
삼별초: 최우가 조직한 사병 집단 → 이후 몽골 항쟁의 핵심 병력
삼별초의 항쟁 (1270~1273)
개경 환도에 반발한 삼별초가 배중손 지휘 하에 항쟁 전개.
| 경로 | 내용 |
|---|---|
| 강화도 | 1270년 거병, 진도로 이동 |
| 진도 | 용장성 근거지, 남해안 장악 |
| 제주도 | 1271년 진도 함락 후 제주도로 이동 |
| 최후 | 1273년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압 |
고려의 불교 문화
주요 불교 사원과 유물
| 유물·사찰 | 내용 | 의의 |
|---|---|---|
| 팔만대장경 | 1236~1251년 조판, 현재 합천 해인사 보관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몽골 격퇴 발원 |
| 직지심체요절 |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 |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 부석사 무량수전 | 봉황산 부석사의 주불전 | 고려 목조 건축의 정수, 배흘림 기둥 |
|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 거대한 석불 | 고려 지방 호족의 독자적 불교문화 |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
| 구분 | 의천 (1055~1101) | 지눌 (1158~1210) |
|---|---|---|
| 활동 시기 | 고려 전기 | 무신 집권기 |
| 종파 | 천태종 창시 | 조계종 정립 |
| 사상 | 교관겸수(教觀兼修) | 정혜쌍수(定慧雙修), 돈오점수(頓悟漸修) |
| 특징 | 교종 중심으로 선종 통합 | 선종 중심, 수선사 결사 운동 |
고려의 사회·경제 제도
토지 제도: 전시과
| 구분 | 내용 |
|---|---|
| 경종(976년) 시정전시과 | 관품과 인품 기준으로 지급 |
| 목종(998년) 개정전시과 | 관품 기준으로만 지급, 18등급 |
| 문종(1076년) 경정전시과 |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 제도 안정화 |
전시과의 특징: 관리에게 토지 수조권(세금을 거둘 권리)만 지급, 세습 불가(원칙)
귀족 사회와 음서제
음서제(蔭敍制): 5품 이상 고위 관리의 자손에게 과거 없이 관직을 주는 제도. 귀족 사회의 특권 유지 수단
| 계층 | 내용 |
|---|---|
| 귀족 | 5품 이상, 음서·과거로 관직 진출, 토지·노비 보유 |
| 중류층 | 향리·하급 관리·군인·잡류 |
| 양인 | 농민(백정), 상인, 수공업자 |
| 천민 | 노비(공노비·사노비), 부곡민, 향·소·부곡 거주민 |
고려의 주요 연표
| 연도 | 사건 | 의의 |
|---|---|---|
| 918년 | 왕건, 고려 건국 | 후삼국 시대 시작 |
| 935년 | 신라 병합 | 경순왕 항복 |
| 936년 | 후백제 정복 | 후삼국 통일 완성 |
| 956년 | 노비안검법 시행 | 광종의 왕권 강화 |
| 958년 | 과거제 시행 | 쌍기 건의, 문신 관료제 기반 |
| 982년 | 최승로, 시무 28조 건의 | 유교적 통치 이념 확립 |
| 993년 | 서희의 외교 담판 | 강동 6주 획득 |
| 1019년 | 귀주대첩 | 강감찬, 거란군 대파 |
| 1104년 | 별무반 창설 | 윤관, 여진 대비 |
| 1107년 | 동북 9성 축조 | 여진 정벌 |
| 1170년 | 무신정변 | 정중부 등 집권, 의종 폐위 |
| 1196년 | 최충헌 집권 | 최씨 정권 시작 |
| 1231년 | 몽골 1차 침입 | 대몽항쟁 시작 |
| 1232년 | 강화도 천도 | 장기 항전 결정 |
| 1236~1251년 | 팔만대장경 조판 | 불력으로 몽골 격퇴 기원 |
| 1270년 | 개경 환도, 삼별초 항쟁 | 원 간섭기 시작 |
| 1377년 | 직지심체요절 인쇄 |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 |
핵심 개념 카드
광종의 개혁 3총사 ★★★★★
: 노비안검법(956) + 과거제(958) + 공복 제정 → 호족 약화·관료제 강화
암기 포인트: “노·과·공” — 노비 해방, 과거 도입, 공복(복색) 정비
사심관 vs 기인 ★★★★☆
: 사심관 = 중앙 관리가 출신 지역 담당(간접 통제) / 기인 = 호족 자제를 개경에 인질로(직접 통제)
암기 포인트: 사심관은 중앙인이 지방 관리, 기인은 지방인이 중앙에 머뭄
서희 vs 강감찬 ★★★★★
: 서희(993년, 외교 담판 → 강동 6주) vs 강감찬(1019년, 귀주대첩 → 군사 승리)
암기 포인트: 서희=말로 이겨서 땅 얻음 / 강감찬=싸워서 이김
무신정변(1170년) ★★★★★
: 정중부·이의방·이고 거사 → 의종 폐위 → 100년 무신 집권기 시작
암기 포인트: 1170 = “일이칠공(一二七空)” — 문신 자리가 공(空)이 됨
팔만대장경 vs 직지심체요절 ★★★★★
: 팔만대장경(1236~1251, 목판, 해인사) ≠ 직지심체요절(1377, 금속활자, 청주 흥덕사)
암기 포인트: 팔만=목판·몽골 / 직지=금속활자·세계 최초
전시과 3단계 ★★★☆☆
: 시정전시과(976, 관품+인품) → 개정전시과(998, 관품만) → 경정전시과(1076, 현직만)
암기 포인트: 시간이 갈수록 지급 기준이 엄격해짐
실전 퀴즈
Q1. 광종이 실시한 노비안검법(956년)의 목적과 효과를 서술하시오.
정답: 노비안검법은 후삼국 전쟁 중 불법으로 노비가 된 양인을 다시 양인 신분으로 회복시키는 법령이다. 목적: ① 호족의 경제적 기반(노비 노동력)을 약화시켜 왕권 강화 ② 양인 수 증가로 국가 세수 확대. 효과: 호족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광종은 이를 발판으로 과거제 도입 등 추가 개혁을 단행하였다. 단, 호족의 강한 반발도 불렀다.
Q2. 서희의 외교 담판(993년)의 핵심 논리와 결과를 쓰시오.
정답: 거란 장수 소손녕이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난 나라이고, 고구려 땅은 거란의 것”이라 주장하자,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므로 고구려의 옛 땅(압록강 동쪽)은 고려의 영토”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거란과 교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이에 여진이 있기 때문이며, 여진을 몰아내면 거란과 통교하겠다”고 제안하였다. 결과적으로 거란은 군대를 철수하고, 고려는 강동 6주를 확보하여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장하였다.
Q3. 삼별초는 어떤 조직이며, 왜 항쟁을 벌였는가?
정답: 삼별초는 최우가 조직한 고려의 특수 군사 집단으로,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구성되었다. 원래 도적 포착을 위한 야별초에서 시작하여 최씨 정권의 사병 역할을 하였다. 1270년 고려 정부가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기로 결정하자, 삼별초는 이에 반발하여 배중손 지휘 하에 강화도에서 거병하였다. 이들은 진도→제주도로 이동하며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1273년 여몽 연합군에 의해 최종 진압되었다. 삼별초 항쟁은 반원(反元) 자주 의식의 표현이자 무신 정권의 마지막 저항으로 평가된다.
OIYO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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