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 32세에 세상의 끝까지 정복한 남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13세부터 3년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받았습니다. 철학, 의학, 과학, 문학 — 당대 최고의 지성인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사랑해서, 아킬레우스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항상 《일리아드》 사본을 단도와 함께 베개 아래에 두고 잤다고 합니다.
20세의 왕, 22세의 정복자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되자 알렉산드로스는 20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동요하자 즉각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기원전 334년, 22세의 알렉산드로스는 4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아시아로 건너갔습니다. 목표는 페르시아 제국 정복이었습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 프리기아(지금의 터키)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풀기 불가능하다는 전설의 매듭을 칼로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매듭을 푸는 것”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른다’는 표현이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불패의 전쟁
알렉산드로스는 13년간의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이수스 전투(기원전 333년):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의 대군을 격파. 다리우스는 가족을 버리고 도주.
가우가멜라 전투(기원전 331년): 페르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대와 맞서 승리. 페르시아 제국 붕괴.
이집트 정복(기원전 332년): 이집트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준 알렉산드로스를 파라오로 맞이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습니다.
세상의 끝을 향하여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알렉산드로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 북서부까지 진출했습니다. 마침내 병사들이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반란에 가까운 요구를 해서야 동쪽 진격을 멈추었습니다.
기원전 323년, 바빌론으로 귀환한 알렉산드로스는 32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아직도 불명확합니다 — 말라리아, 장티푸스, 독살, 혹은 과도한 음주로 인한 합병증이 의심됩니다.
헬레니즘 세계
알렉산드로스의 죽음 이후 제국은 그의 장군들(디아도코이)에 의해 분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정복한 영역에 뿌린 씨앗은 헬레니즘(Hellenism)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리스 문화와 언어가 이집트에서 인도 국경까지 퍼졌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세계 최대의 지식 보고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어는 지중해 세계의 공통어가 되어, 훗날 기독교 성경(신약성경)이 그리스어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자인가, 정복자인가
오늘날 알렉산드로스는 복합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정복한 도시들을 파괴한 잔인한 면(페르세폴리스 방화, 티루스 학살)도 있지만, 동서 문화 융합을 추구하며 페르시아 귀족과 결혼하고 페르시아 복장을 입은 면도 있습니다.
32년의 짧은 삶에서 그는 역사의 경로를 영구적으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그를 ‘대왕’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OIYO 역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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