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동서 문명을 이은 4000km의 교역로
비단길이라는 이름의 함정
‘실크로드(Silk Road)‘라는 이름은 1877년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은 두 가지 점에서 오해를 낳습니다.
첫째, ‘길’이 아닙니다. 단일한 고속도로가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루트의 네트워크입니다. 둘째, ‘비단’만이 아닙니다. 비단은 가장 중요한 상품 중 하나였지만, 실크로드는 향신료, 유리, 도자기, 금속, 말, 그리고 무형의 것들 — 종교, 기술, 질병, 예술 — 이 함께 흘렀습니다.
2000년의 역사
실크로드는 한(漢)나라(기원전 206년~기원후 220년)가 중앙아시아를 개방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습니다.
**한나라 무제(기원전 141~87년)**는 장건을 서역에 사절로 보내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원래 목적은 흉노를 포위할 동맹 확보였지만, 이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인도, 파르티아(이란)와의 교역로가 열렸습니다.
중국에서 서쪽으로: 비단, 도자기, 제지술, 화약, 나침반 서쪽에서 중국으로: 유리, 포도주, 면화,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로마와 중국의 만남: 기원전 1세기, 파르티아(이란)를 통해 중국 비단이 로마에 전해졌습니다. 로마 귀족들이 중국 비단에 열광했지만, 두 제국은 서로의 존재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 직접 교류는 없었습니다. 로마는 중국을 비단을 만드는 신화적인 나라 ‘세리카(Serica)‘로 불렀습니다.
종교의 고속도로
실크로드에서 가장 중요하게 전파된 것은 아마 종교일 것입니다.
불교: 기원후 1세기경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 동아시아 불교 문화권은 실크로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이슬람교: 7세기 아랍 팽창기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와 중국까지 진출했습니다. 당나라(635년)에 이미 기독교 교회가 있었습니다.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황금기
실크로드의 전성기는 역설적으로 정복자의 시대였습니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부분을 통일하면서 ‘팍스 몽골리카(몽골의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상인들은 중국에서 흑해까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동방견문록》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입니다.
흑사병의 길
하지만 실크로드는 좋은 것만 운반하지 않았습니다. 14세기, 흑사병이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몽골 군대가 크림반도 도시를 공성할 때 페스트로 죽은 시체를 성 안으로 투척했고, 이것이 유럽 전파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유럽 인구의 약 1/3이 이 전염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현대의 실크로드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정책은 실크로드의 현대판입니다. 육상과 해상 두 루트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 프로젝트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제안해 현재 140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대 실크로드가 낙타와 상인으로 동서를 연결했다면, 현대의 실크로드는 철도와 항구와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됩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OIYO 역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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