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법 — 한 특허를 두고 두 개의 소송이 동시에 굴러간다
앞 챕터들은 특허를 얻는 법을 다뤘습니다. 출원, 심사, 등록, 그리고 국제출원까지. 이 챕터는 그 다음 세계입니다 — 얻은 특허가 다투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두 세계는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등록 단계에서 변리사는 심사관을 설득하지만, 분쟁 단계에서는 판사를 설득합니다. 상대가 다르면 규칙도 다릅니다. 그 규칙이 민사소송법입니다.
1. 이원 구조 — 이 과목을 이해하는 유일한 출발점
특허 분쟁이 벌어지면 사건은 두 갈래로 갈라져 동시에 굴러갑니다.
하나의 특허를 두고 두 갈래가 동시에 진행된다.
- 특허권자가 건다 — 침해금지·손해배상 청구 (민사): 지방법원 → 특허법원(항소)
- 침해자가 건다 — 무효심판 (행정): 특허심판원 → 특허법원 심결취소소송
같은 특허인데 심판정이 둘입니다. 특허권자는 “침해했으니 물어내라”고 하고, 상대는 “그 특허는 애초에 무효”라고 맞받습니다. 각각 다른 절차, 다른 법, 다른 시간표로 움직입니다.
여기서 이 과목의 근본 문제가 나옵니다 — 두 절차의 결론이 엇갈리면 어떻게 되는가. 침해소송에서 졌는데 나중에 특허가 무효로 확정되면? 특허법 제133조 제3항에 따라 무효 심결이 확정되면 특허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봅니다. 이미 배상금을 낸 사람은 없는 권리에 돈을 낸 셈이 됩니다.
2016년부터 특허침해소송의 항소심이 특허법원으로 모인 것도 이 엇갈림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법원이 두 갈래를 다 보면 판단이 갈릴 여지가 줄어듭니다.
2. 민사소송의 두 기둥 — 그리고 특허소송에서 왜 삐걱대는가
- 처분권주의: 소송을 열고 닫고 범위를 정하는 것은 당사자다. 법원은 당사자가 구하지 않은 것을 주지 않는다.
- 변론주의: 사실과 증거는 당사자가 낸다. 법원이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는다.
민사소송은 이 두 기둥 위에 서 있고, 특허소송에서 두 번째 기둥이 특히 무겁게 작동합니다.
왜냐하면 침해의 증거는 거의 항상 상대방 공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제품을 만드는지는 만드는 쪽만 압니다. 변론주의를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원고는 자기가 볼 수 없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특허법이 개입합니다.
3. 증명책임의 완화 — 구조적 불균형을 법이 메운다
| 장치 | 근거 | 무엇을 바꾸는가 |
|---|---|---|
| 생산방법의 추정 | 특허법 제129조 | 물건 생산방법 특허라면, 동일한 물건은 그 방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
| 자료제출명령 | 특허법 제132조 | 침해 증명과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법원이 제출하게 한다 |
| 손해액 추정 | 특허법 제128조 | 침해자가 얻은 이익 등을 손해액으로 추정한다 |
추정과 간주는 다릅니다. 추정은 반증으로 깨집니다 — 상대가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만든다”를 입증하면 뒤집힙니다. 간주는 반증으로 깨지지 않습니다. 시험에서 이 둘을 바꿔 쓰면 그 문장은 틀립니다.
이 장치들의 공통점은 증명책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입니다. 원고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야 할 문턱이 현실적인 높이로 내려옵니다.
4. 권리남용 — 두 갈래를 봉합한 판례
이원 구조의 가장 아픈 지점은 이것입니다. 무효가 분명해 보이는 특허라도, 무효심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그 특허는 유효합니다. 그러면 침해소송 법원은 무효가 뻔한 특허에 기초한 청구를 그대로 인용해야 할까요?
대법원 2012. 1. 19. 선고 2010다95390 전원합의체 판결이 답했습니다.
특허에 진보성이 없어 무효임이 명백한 경우, 그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손해배상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다.
침해소송 법원이 무효심판의 결론을 기다리지 않고, 무효 사유가 명백한지를 스스로 판단해 청구를 물리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판결이 왜 전원합의체였는지가 핵심입니다. 그전까지는 “무효 여부는 특허심판원의 전속 권한이므로 침해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 힘을 가졌습니다. 전합은 그 선을 옮겼습니다 — 무효를 선언하는 것과, 그 특허권 행사가 남용인지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는 논리로.
주의할 경계가 있습니다. 침해법원의 판단은 그 사건에서 청구를 물리치는 효과에 그칩니다. 특허 자체가 소멸하지는 않습니다. 특허를 없애려면 여전히 무효심판을 거쳐야 합니다. 사례형에서 “침해법원이 특허를 무효로 했다”고 쓰면 그 답안은 틀립니다.
5. 기판력 — 어디까지 다시 다툴 수 없는가
확정판결의 구속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세 방향으로 범위가 잘립니다.
| 기판력의 범위 | 내용 |
|---|---|
| 주관적 범위 | 원칙적으로 당사자와 그 승계인에게만 미친다 |
| 객관적 범위 | 판결 주문에 포함된 판단에만 미친다 (이유 중의 판단에는 미치지 않음) |
| 시적 범위 | 사실심 변론종결 시가 기준. 그 뒤 새로 생긴 사유는 막지 못한다 |
특허 분쟁에서 시적 범위가 자주 문제됩니다. 변론종결 뒤에 무효심결이 확정되면 어떻게 되는가 — 새로 생긴 사유이므로 재심 등 별도의 길을 검토하게 됩니다. 기판력이 모든 것을 덮는다고 생각하면 이 구조가 보이지 않습니다.
6. 적용 범위와 한계
- 이 과목은 특허법의 부록이 아닙니다. 처분권주의·변론주의·기판력은 특허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일반 원칙이고, 특허법의 특칙들은 그 위에 얹힌 예외입니다. 원칙을 모르면 예외가 왜 예외인지 알 수 없습니다.
- 심결취소소송은 민사소송이 아니라 행정소송입니다. 특허법원이 둘 다 다루기 때문에 섞이기 쉽지만, 적용 법규와 구조가 다릅니다.
- 실무에서는 상당수가 합의로 끝납니다. 판결까지 가는 사건만 보고 분쟁을 이해하면 현실과 어긋납니다. 협상력의 상당 부분이 “무효 가능성”에서 나오고, 그 계산이 바로 이 챕터의 내용입니다.
핵심 개념 카드
이원 구조 ★★★★★ : 침해소송(민사)과 무효심판(행정)이 같은 특허를 두고 따로 굴러간다. 암기 포인트: 침해=민사, 무효=심판
권리남용 항변 (2010다95390 전합) ★★★★★ : 무효임이 명백한 특허권 행사는 권리남용. 다만 특허가 소멸하지는 않는다. 암기 포인트: 청구는 막고, 특허는 남는다
추정 ≠ 간주 ★★★★★ : 특허법 제128·129조는 추정이라 반증으로 깨진다. 암기 포인트: 추정=반증가능
변론주의의 구조적 한계 ★★★★☆ : 침해 증거는 상대 공장 안에 있다. 제129·132조가 그 문턱을 낮춘다. 암기 포인트: 증거는 저쪽에 있다
기판력 세 범위 ★★★★☆ : 주관=당사자, 객관=주문, 시적=사실심 변론종결 시. 암기 포인트: 당사자-주문-변론종결
무효 확정의 소급효 ★★★☆☆ : 특허법 제133조 제3항 —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본다. 암기 포인트: 무효=소급
실전 퀴즈
Q. 침해소송 법원이 “이 특허는 무효임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특허는 소멸하는가?
소멸하지 않는다. 권리남용 법리는 그 사건에서 청구를 물리칠 뿐이고, 특허를 없애려면 무효심판을 거쳐야 한다. 침해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무효 자체가 아니라 그 권리 행사가 남용인지다. 이 구별을 놓치면 답안이 통째로 어긋난다.
Q. 원고가 상대방의 제조 방법을 알 수 없다. 침해를 어떻게 증명하는가?
물건을 생산하는 방법의 발명이라면 특허법 제129조의 추정이 작동해, 동일한 물건은 그 방법으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제132조의 자료제출명령으로 상대방 자료를 끌어낼 수 있다. 증명책임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턱이 낮아지는 것이며, 추정인 이상 상대의 반증으로 깨질 수 있다.
Q. 손해액 추정 규정이 있으니 원고는 손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가?
아니다. 추정은 산정의 어려움을 덜어 줄 뿐 침해와 손해의 존재까지 면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추정인 이상 침해자가 반증으로 다툴 수 있다.
Q. 심결취소소송과 침해소송의 항소심이 모두 특허법원에서 다뤄진다. 두 소송은 같은 종류인가?
아니다. 심결취소소송은 행정소송이고 침해소송은 민사소송이다. 2016년부터 항소심 관할이 특허법원으로 모인 것은 판단의 엇갈림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 두 절차의 성질을 하나로 만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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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일: 20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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